※ 「엑싯으로 주식 부자가 된 개발자, 세계 1위 헤지펀드 전략을 ‘오타쿠처럼’ 뜯어 본 이유: 이루다투자일임 대표 단테 김동주 인터뷰」에서 이어집니다.
최기영(픗픗 아카데미 대표, 이하 최): 수익률은 괜찮으신지요?
단테(이루다투자일임 대표 김동주): 월말마다 한번 확인하는데, 아직 월중이라 자세한 수익률을 모릅니다.
이루다투자일임 대표 단테 김동주 님.
최: 투자하는데 자주 확인을 안 하세요?
단테: 처음 전업 투자를 시작했을 때는 계좌를 매일 봤어요. 아니 거의 매시 매분마다요. 그러다 보니 제가 피폐해졌어요. 오르면 앗싸, 떨어지면 아씨… 사람이 조울증 온 것처럼 변해서, 이후 아예 계좌를 안 보겠다고 다짐하고 블로그에도 선언을 했어요. 그 뒤로는 꾹 참고 계좌를 안 보는 버릇을 들였어요.
사실 확인할 필요가 없는 덕분이기도 했죠. 올웨더, 자산 배분, 베타 전략은 전략 자체가 "오늘 10% 벌겠다, 이번 주에 20일 이동평균선 밑으로 떨어지면 손절하겠다"와 같은 식이 아니라,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자는 거니까요. 저는 그걸 "자본주의에 베팅한다"라고 표현합니다.
최: ‘자본주의에 배팅한다’라는 말이 더 자극적이긴 합니다만…
단테: 대공황, 서브프라임모기지, 금융위기, 그리고 지금의 코로나. 위기가 오는 순간은 분명 있어요. 그런데 시기가 문제이지 결국은 회복하고 성장하거든요. 단기 투자하시는 분들에겐 힘든 시간일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는 사람들 처지에선 사실 큰 이슈가 아닐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국 주식은 오른다는 확신, 저는 그 확신에 배팅하는 거죠.
최: 요즘 개미 투자자들도 결국 오른다는 확신 때문에 대거 진입한 거 같은데…
단테: 결국 오를 자산은 오른다지만, 그건 장기적인 얘기이고 단기적으로는 불확실해요. 확신보다는 기대, 정확히는 희망 사항인 경우가 많아요. 확신인지 희망 사항인지는 얘기를 해보면 느껴집니다. 자신의 투자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에 따라서요.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전략은, 스스로가 잘 이해하는 전략이에요. 그게 장기투자든 단기투자든, 자산배분이든 트레이딩이든 개별 종목이든 비트코인이든, 제가 만나 본 잘하는 투자자들은 공통으로 자신이 어떤 투자를 하는지 정말 길게 얘기할 수 있더라고요.
개별주식을 잘하던 분은, 한 종목만 10년을 봤어요. 그 회사의 지분 관계, 상속 이슈, 등을 10년 동안 보면서, 소액주주 모임도 계속 나가고… 그런 분들은 주식이 고점에서 40% 박살이 나도 아무렇지가 않은 거예요. 다 알거든요. 이 회사의 모든 사정을 다 알고, 이 회사에 부동산이 얼마나 있는지, 어느 정도의 값어치인지 등등을 속속들이 아니까, 그런 분들은 개별 주 투자하기 전이나 후나 전혀 두려움이 없거든요. 트레이딩도 자산 배분도 마찬가지예요. 결국에 자신이 하는 투자를 얼마나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느냐가 제가 보는 좋은 투자냐 안 좋은 투자냐의 범위죠. 물론 그게 쉽지 않으니까 투자 업체가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최: 투자일임 업체를 시작하셨는데요. 투자일임에서는, 돈을 받아 바로 투자를 해주는 거예요?
단테: 고객으로부터 투자금을 받아서(수취), 고객 대신 투자하는 것은 집합 투자업자들이 하는 일이에요. 흔히 말하는 펀드. 반면 투자일임은 고객의 증권사 계좌에 투자금이 그대로 있어요. 고객 계좌인데 매수와 매도 명령만 투자사에서 내리는 거죠. 내 계좌에 대한 리모컨을 빌려줬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리모컨을 들어도 TV는 원래 자리에 안전하게 있는 것처럼, 투자 일임사도 고객의 계좌 내 자산을 빼낼 수 없고 투자만 집행해요.
최: 수많은 계좌를 하나하나 컨트롤해주는 그런 역할이네요.
단테: 네, 그래서 사실상 소프트웨어 기술로 승부하기 좋은 비즈니스라고 봐야죠. 알고리즘이 고객마다 차별적으로, 기계적으로 매수/매도를 잘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 우리나라에 로보어드바이저는 주로 투자자문사 형태인데, 일임과는 무엇이 다른 건가요?
단테: 투자자문은 투자일임과는 달리 고객의 계좌를 운용할 권한이 없습니다. 투자자문사들이 만든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들은 매수/매도 때마다 고객 동의를 받아서 처리하는 식으로 서비스를 구현했어요. 매번 고객이 확인/승인해야 한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스마트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최: 자문에서는 결국 고객이 결정하란 거군요.
단테: 물론 그걸 더 선호하는 분도 있겠지만… 이게 참 스트레스받고 힘든 일입니다. 앞서서 제가 계좌 확인을 그만둔 얘기를 말씀드렸잖아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자문을 받으면서 계속 내가 확인하고 결정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 결국 게으른 투자자 관점에서는 자문보다는 일임이 조금 더 속 편한?
단테: 저도 투자자문이 아닌 투자일임을 하고 싶었던 게 그런 부분 때문이에요. 일임이라는 것 자체가 고객이 맡긴 다음부턴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 저라면 그런 서비스를 바랄 것 같거든요.
최: 저도 바라는 게 바로 그겁니다.
단테: 고객들을 대신해 투자의 과정을 모두 다 대신 집행해주고,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상황과 성향에 맞게 자산관리를 해주는 것이 목표입니다. 게으른 투자자를 위해서요.
게으른 투자자를 위해서…
최: 자문은 철저하게 알고리즘을 만든 사람의 스타일이잖아요.
단테: 그리고 액션을 바로바로 못 하니까요. 저희는 그것 자체도 거의 실시간으로 내 취향에 따라 변경할 수 있게 해주는 것까지 염두에 둡니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 원화에 대한 포지션을 늘리고 싶은지, 달러화에 대한 포지션을 늘리고 싶은지, 이게 정답은 없는 결정이거든요. 물론 저희는, 달러 100%를 원하는 사람도 있고. 달러 100%를 가졌을 때는 좋은 게, 요즘 같은 때 좋죠. 경제 위기가 터지면 달러환율이 1,500원 넘는 경우들도 있으니까, 그런 경우는 사실 달러 100% 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런 니즈가 좀 많은 사람들이고.
근데 경제 위기가 끝나고 나면 달러 가진 사람들이 슬프거든요. 원화가 1,500원이었다가 원화가 다시 1,000원 이렇게 돌아와요. 그러면 달러 좋았던 사람들이 편치 않아지는데, 그 타이밍을 잡는 게 또 신의 영역이에요.
그래서 저는 하락장에서도 마음이 편하고 싶다면 달러 포지션을 가져가는 게 맞는데,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가고 싶다고 하면 원화도 약간은 섞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하고. 근데 그런 건 다 취향이라서 고객의 취향을 매수/매도 로직에 반영하고자 합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요.
최: 게으르지 않은 적극적인 투자자들은 요즘 같은 때 무엇을 공부하고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나요?
단테: 저는 늘 똑같아요. 어떻게 투자할지보다 더 중요한 최우선 목표는 내가 하려는 투자법이 이해되었다면 어떻게 투자해도 좋지만, 가급적 자산 배분과는 병행하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이 자산 배분이라는 것은 콘셉트 자체가, 오르고 내리는 타이밍을 모른다는 인식에서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정해진 분산으로 위험에 대응하면서, 전체 시장의 성장률만 따라가는 ‘게으른 베타 수익’을 추구하는 게 이 자산 배분인데… 내가 굳이 노력해서 다른 방식으로 투자하겠다면, 이 자산배분의 베타 수익보다 더 잘해야 의미가 있겠죠? 시장 수익률을 뛰어넘는 수익을 내는 것을 ‘알파 수익’이라고 하는데, 내가 과연 알파 수익을 잘 낼지 알 수 없으니 자산 배분과 병행하면서 몇 년 정도는 비교해보시라는 거에요.
하지만 알파 수익을 지속한다는 게 절대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알기 어려운 게 매수/매도 타이밍이죠. 한두 번은 맞출 수 있는데,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결국은 기관투자자와도 경쟁해야 합니다.
1945년도에 미국 시장에서 가계가,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였어요. 그러니까 워렌 버핏이 젊었을 때 경쟁했던 사람들은 과장해서 말하면, 다 개미들이었어요. 근데 2008년도에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주식시장에서 20%가 됐어요. 80%의 기관투자자들이 존재하죠. 기관 투자자는 개인보다 훨씬 더 공부를 많이 하고 시간을 쓰는 선수들이 득실득실합니다. 그런 선수들과 경쟁을 해서 이기는 게 쉬운 일이겠냐는 겁니다.
이건 그 선수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세계 최고 투자사 브리지워터도 2008년에 세계 대공황이 시작되는 줄 알고 올웨더를 잠깐 안전자산 위주로 대피를 했었어요. 그랬다가 -20% 손실을 봤어요, 원래 포트폴리오로 가만히 있었으면 -7 ~ -8% 정도로 마무리했을 것을, 괜한 짓 해서 -20% 난 거예요. 정작 레이 달리오는 2007년에 경제 위기를 경고했던 선지자였단 말이죠. 선지자조차 틀리는데, 우리가 그 경쟁을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알파를 추구하는 게 개인 투자자에게 어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차라리 알파는 기관의 영역이라 인정하고, 자산의 시장수익률만 추구하겠다는 투자가 개인에겐 합리적이라고 봐요. 단순히 결과가 더 나은 것뿐 아니라, 마음도 편합니다. 장이 흔들린다고 해도 포트폴리오를 유지할 수가 있죠. 이 투자의 목표는 내일 파는 게 아니니까요. 타이밍 투자는 좋을 때, 비쌀 때 판다는 건데 그때가 도대체 언제 인지 아무도 모르죠. 그런데 자산 배분투자는 언제 팔아야 하냐면, 그냥 내가 돈이 필요할 때 정리하면 되는 것이에요. 타이밍은 내가 정하는 거죠.
최: 배분을 해 놓고 기다리거나 까먹거나 계속 추가 불입하거나 하다가, 결혼한다거나 애가 학교를 간다거나 그럴 때만 필요한 돈씩 찾아서 잘 쓰자?
단테: 그렇죠. 저는 사람들의 여윳돈을 저축하는 통장을 대체하고 싶어요.
최: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이 손실을 두려워할 텐데 저축통장을 대체하긴 힘들지 않을까요?
그래서 중요한 게 '이해하는 것'이에요. 사람들은 손실을 두려워하지만, 돈을 제대로 굴리지 못해서 기회를 놓치는 것도 두려워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예금을 해서 이자가 발생하는 건 이해하기 쉽고, 투자로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건 이해하기 어렵잖아요? 투자도 이해가 되면 얘기가 달라지는 거지요.
저는 로또 이런 걸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저 같은 공돌이 입장에서는 기댓값이 낮은 게임엔 흥미가 없었어요. 로또는 지도록 설계된 게임이죠. 근데 자산배분투자는 완전히 반대에요. 힘든 상황이 나올 수도 있지만, 이걸 계속하면 결국에는 기대수익이, 대부분의 투자방식보다 더 높거든요. 반복하면 이기도록 설계된 게임인 거죠. 하물며 따라 하기도 쉬운 투자법이라면 참 좋은 투자법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단테도 질 자신이 없다.
최: 자산 배분이 따라 하기 쉽다면 굳이 뭔가 공부하거나 배울 필요가 적어 보이는데요.
단테: 그럴 것 같지만, 그리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올웨더 같은 자산 배분 투자를 쉽게 시작하지만, 막상 힘든 시기를 만나면 못 버텨요. 이게 왜, 어떻게 통하는지를 모르면 불안하니까요.
제 유튜브나 블로그에는 "오늘은 수익이 괜찮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날은 "오늘 수익이 별로였는데, 왜 주식과 채권이 반대로 움직인다면서 같이 움직여요?" 같은 댓글이 달려요. 이건 뭐냐면, 자산 배분에 관해 공부 안 했다는 얘기거든요. 자산 배분 투자에 있어서 하루하루의 손익은 노이즈에 불과해요.
최: 시장 전체는 결국은 올라갈 거니까.
단테: 장기적으로 결국은 상승하고, 그럼 자산 배분이 먹히고. 가장 보수적으로 성공하는 방법입니다.
최: 보수적인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게 가치투자 쪽이잖아요? 가치투자와 자산 배분은 또 완전 다른 포지션인가요?
단테: 자산배분은 탑다운 투자에요. 전체를 보는 거죠. 내가 이 세상에서 투자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그걸 전체 시장, 전체 시장이 커지는 데 베팅을 그냥 하는 거죠. 역사적으로 지속해서 커지는 시장이라는 게 뭐가 있을까, 그렇게 보니까 주식이랑 채권이 보이는 거고.
반대로 가치투자는 완전 바텀업이에요. 작은 거로 시작하는 거예요. 한 종목. 그 한 종목이 잘 될 이유를 찾아내야 하는 거죠. 그걸 위해 그 비즈니스를 이해하고, 속한 산업을 이해하고, 관련 있는 시장을 이해하고, 그것들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경제 상황을 보고…
둘 중에 뭐가 더 좋냐는 건 레이 달리오가 옳으냐 워런 버핏이 옳으냐와 같은 질문이라고 볼 수 있겠어요. 사실 둘 다 옳거든요. 결국엔 나의 투자원칙, 내 투자의 대전제가 뭐냐의 문제로 귀결되긴 해요.
워런 버핏과 레이 달리오의 논쟁은 이 글을 참고.
최: 가치투자도 알파라고 봐야 하나요?
단테: 가치투자는 알파죠. 물론 베타의 영향을 받겠지만, 알파를 추구하는 거죠. 특정 종목을 골라야 하고, 그다음에 타이밍을 봐야 하고. 어려워요
최: 단타는 타이밍에 올인 한 거고, 알파의 최극단이 퀀트라고도 하고, 가치투자도 알파라고 하면… 뭔가 개념이 복잡하네요.
단테: 퀀트는 계량적 투자를 총칭할 뿐이고, 계량적으로 어떤 투자를 할지는 또 별개의 문제인 거죠. 퀀트로 장기 투자, 가치 투자, 베타 투자를 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죠. 물론 현업에서 퀀트를 무섭게 쓴다고 알려진 헤지펀드들은 매우 짧고 빈번한 거래로 알파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들 중 일부는 롱숏 전략을 해요. 롱은 매수이고 숏은 매도인데, 이 둘을 동시에 같이 쓰면서 시장의 체계적인 위험을 헷징할 수 있죠. 이런 걸 마켓 뉴트럴이라고 해요. 레이달리오의 퓨어 알파 펀드도 그것을 추구해요. 알파의 완전 극단.
반대로 베타의 극단에 가 있는 게 올웨더죠. 그래서 브릿지워터라는 회사는 양극단을 추구하는 거예요. 대부분의 투자 방식은 그 중간의 어딘가에요.
최: 대표님은 단타를 통한 알파 쪽에 더 심취하지 않으셨어요?
단테: 퀀트 기반의 알파 전략을 2년 정도 다양하게 파 봤는데요. 그 과정에서 느꼈던 가장 큰 문제가 혼자라는 물리적 한계였어요. 대부분의 퀀트 알파 펀드는 몇 개의 알고리즘(모델)에 의존하지 않아요. 수천 개의 모델이 필요하죠. 어느 하나의 모델도 장기적으로는 믿을 수 없거든요. 기본적으로 시장의 모순을 발견해서 통계적/펀더멘탈적 차익을 먹겠다는 건데… 그게 얼마간 유지될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 수백, 수천 가지 이상의 독립적인 논리를 세우고 조합하는 거죠. 그런데 이게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결국 위에서 제가 말한, 기관들과의 경쟁을 이기기가 몹시 어려운 거죠.
최: 그럼 퀀트 강의들에서 나오는 알고리즘들은 어떤가요? 현업에서 못 쓸 수준의?
단테: 모든 알고리즘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아주 커요. 당연해요. 만약에 특정 알고리즘이 알려지고, 그 알고리즘을 모두가 같은 알고리즘을 운영하기 시작하면 그 전략의 초과수익은 거짓말같이 사라집니다. 초과 이익을 편하게 거두던 알고리즘들이 주변의 몇몇 트레이더들에게 알려지면서 거짓말같이 수익이 사라지는 것을 제가 수십 번 목격했습니다. 정말 돈이 되는 영업기밀은, 사력을 다해서 지키려고 합니다. 물론 현업의 헤지펀드들은 엄청나게 큰돈을 굴리니까, 조그만 영역에서 통하는 정도의 알고리즘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한계가 뚜렷하죠.
최: 자신만의 알고리즘을 만들어서 어떻게 해볼 순 없을까요?
단테: 제가 그걸 해 본 셈인데요. 제가 핵심 알고리즘(모델)을 5개 만들었어요. 그런데 알고리즘 5개 만들면 이게 끝이냐? 아니죠. 전략 6번째를 만들고, 또 연구해서 그다음 전략 만들고… 그리고 만든 전략이 잘 돌아가는지 매일 모니터링을 해야 해요. 트레이딩 전략을 운용하던 내내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전략을 5개나 만들면 룰루랄라 놀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와 정반대였어요.
물론 회사에 다니지 않고 전업으로 매달린 행운이 따라준다면 완전히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 확률이 매우 낮다고 생각해요. 퀀트 기반의 헤지펀드는 수많은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하나의 시스템이에요. 혼자로는 못 이기죠.
최: 그래서 다들 바쁘군요? 펀드매니저들이…
단테: 어떤 펀드 매니저냐에 따라 다르게 바쁘겠지만… 업으로 알파 투자를 하는 것은 참 바쁜 일이죠. 계속 알파를 만들어낼 투자 종목, 투자 방법을 찾아야 하고, 기존 투자도 유효한지 관리해야 하고. 혼자 하기에 벅찬 일이에요.
그래서 제가 계속 그 문제에 빠져 있다가, 아이러니한 결론이 나오게 돼요. 이런 알파 트레이딩 전략과 상관성이 없이 돈을 벌 수 있는 게 뭘까를 생각하다 보니, 그게 바로 자산 배분인 거였죠. 기존의 전략들과 논리와 근거가 다른, 기존의 알파 전략들과 상관이 없는 전략이 필요했는데, 알파 트레이딩이랑 가장 상관이 없는 건 결국 자산 배분 베타 전략이거든요.
물론 자산 배분이라고 마냥 쉽고 편한 건 아니에요. 그래도 계속 뭔가를 찾아내고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행복했죠. 자산 배분은 간략히 주식 60 채권 40으로 배분할 수도 있겠고 이미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쓸만해요. 그래도 덕후 기질이 발휘되어서 다양한 방식을 찾아보고 공부하고, 이 수많은 자산 배분 중에서 난 무엇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레이 달리오를 알게 됐고… 결국 그의 올웨더에 빠지게 된 거죠.
최: 주식과 채권은 서로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섞는 거죠? 금도 그렇고, 원자재도 그렇고. 그런데 플러스마이너스로 상쇄되면 이익이 없는 거 아닌가요?
단테: 그 질문도 많이들 하세요. 주식과 채권이 반대로 가면 둘 다 투자하면 0이 되는 거 아니냐. 여기서 알아야 할 기본 전제가, 자산 배분할 때 넣는 자산들은 대부분 우상향(장기적으로 가격이 상승)하는 자산들로 구성한다는 거예요. 주식과 채권도 우상향하는 자산들이에요. 따라서 단기적으로 둘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도, 장기적으로는 둘 다 우상향하는 가운데의 엇갈림인 거죠.
가장 이해하기 쉬운 그래프가 이거에요. 올웨더든 다른 자산 배분법이든 이걸 기본 원리로 삼죠.
최: 올웨더 말고도 자산 배분 방식에 여러 가지가 있겠군요.
단테: 사실 올웨더라는 표현 대신, 미국에서는 리스크 패리티(Risk parity)라고 말을 많이 합니다. 브리지워터가 1996년에 올웨더펀드로 대박을 내고 난 뒤 그걸 따라 하는 회사들이 되게 많이 나왔어요. 미국의 많은 로보어드바이저 회사들이 리스크패리티 모델을 제공합니다.
최: 그 회사마다 차이점은 뭐죠?
단테: 자산 배분의 비율을 어떻게 다르게 하느냐, 또 그걸 어떤 기준으로 바꾸느냐 혹은 바꾸지 않느냐. 이런 것에서 갈리는 거죠. 저는 이런 문제들을 보수적으로 접근하는데, 더 공격적으로 접근하는 회사들이 있어요. 보수적으로 접근한다는 건 더 다양한 상황을 대비하고, 그 비율을 잘 안 바꾸는 거죠, 비율을. 반대로 공격적으로 접근한다는 건, 좀 더 동적으로 시장 상황이나 시그널들을 예측 또는 반응해서 더 잘해보겠다는 거고… 사실 이러면 자산 배분이지만 알파 전략이에요.
최: 시작하신 투자일임회사의 알고리즘은 올웨더인가요?
단테: 네, 올웨더 기반으로 가는 거죠. 물론 거기서 저희가 한국 투자자 사정에 맞춰서 최적화를 조금 더 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제가 공개한 전략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요.
최: 워런 버핏은 뭐 하지 마라, 뭐 해라 이런 게 있잖아요. 레이 달리오도 그런 게 있나요?
단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투자의 성배’. 투자에서는 영원히 끝없이 돈을 벌 수 있는 걸 ‘성배’라고 해요. 투자에서 도대체 제일 쉽게 돈 벌 방법이 뭐냐, 레이 달리오는 각각의 상관없는 자산에 분산투자 하는 걸 다이버시피케이션(diversification)이라고 해요. 그걸 항상 강조하고, 그다음에는 일반 투자자들한테 제발 타이밍으로 경쟁하지 말라고 해요. 너희들이 타이밍으로 경쟁하는 순간 우리 브리지워터랑 싸우는 것이다, 브리지워터 1,600명 직원이 타이밍 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그것만 하는데, 너희가 경쟁해서 되겠냐? 하는 말이죠.
해봤자…
최: 결국 자산 배분하는 게 그래도 가장 확률이 높은 게 될 수 있고, 그걸 하기 위해서는 올웨더를 최대한 참조를 하고, 올웨더를 알려면… 책을 봐라? 그 공부라는 게 어떤 부분인가요?
단테: 네. 책을 봐도 되고, 수업을 들어도 되고. 제가 책을 통해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고자 했지만, 제 책을 읽고 그냥 받아들이지 말고 의문을 품고 검증하는 거죠. 주식이 우상향한다고? 일본은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올웨더가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도 통할까? 통한다면 이유가 뭐지? 이런 식으로요.
투자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끝나는 게임이 아니에요. 특히 올웨더처럼 장기간 유지해야 하는 자산배분 투자는, 이것이 통한다는 아주 견고한 확신이 필요해요. 그 확신은 남이 만들어 줄 수 없어요. 내가 직접 얻은 결론이 가장 확실한 믿음을 주거든요. 제 책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지만, 다시 되새기고 소화하는 과정을 가지시면 좋을 것 같아요. 투자 중에 힘든 구간을 편안하게 지나가기 위해서, 그리고 내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내 생각보다 더 못 버틸 거라고 생각하셔야 해요.
대부분의 사람은 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동물이거든요. 가격을 보면서 드는 그 생각, 바로 그 일차적으로 드는 생각이 나만 하는 게 아니고 모두가 하는 생각이기 때문에, 보통은 틀리는 경우들이 많아요. 사람들은 틀린 결정들을 끊임없이 계속해요. 그런 틀린 방향에서 벗어나서, 틀린 길에서 빠져나와서 올바른 길로 가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거죠. 물론 제가 너무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얘기하는 걸 수도 있어요.
최: 귀찮으면 투자일임에.
단테: 네, 귀찮거나 부담스러우면 맡기는 거죠. 그때부턴 이쪽 책임이 되는 거고, 저희는 전업의 전문가들이 붙어서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할 테니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오픈소스 같은 느낌으로 갈 생각이에요. 따라 하려고 하면 따라 할 수 있고 크게 수익률도 차이 안 날 테지만, 근데 조금 더 개인화하고 싶고 내 상황에 맞추고 싶고, 더 편하고 싶고… 그러면 그냥 싸게 우리 걸 쓰시라는 논리거든요.
최: 국내 투자계에서는 그렇게 자산 배분을 밀거나 이러지는 않는 것 같아요.
단테: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요. 우선 기대 수익률 문제. 자산배분은 기대수익률이 5~10% 사이인데요, 이게 결코 나쁜 성적이 아니지만, 판매사는 더 높은 수익률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싶어 해요. 그래서 더 공격적인 투자 상품을 내세우죠. 물론 실제로 자산 배분 이상의 수익률을 장기적으로 올리는 상품은 매우 드물어요.
그다음은 회전율 문제. 자주 사고팔수록 증권사가 수수료를 얻는데, 올웨더처럼 정적 자산 배분을 하면 수수료 발생이 적어요. 게다가 정적 자산 배분은 리밸런싱 때 외에는 가만히 놔두니까, 고객이 느낄 때 운용사가 특별히 운용해준다는 느낌을 덜 받죠. 이게 그나마 자주 사고파는 동적 자산 배분을 자꾸 개발하는 이유가 되기도 해요.
종합하면 고객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돈을 벌기 위한 회사들의 사정이 있는 거죠. 그들에게 자산 배분은 마진이 높은 매력적인 상품이 아닌 겁니다. 제가 창업을 하게 된 계기기도 한데, 저는 제가 원하는 자산 배분 방식을 서비스하는 회사가 당연히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제 성에 차는 곳은 없었고요. 자산 배분은 낮은 수수료로, 담백하게 제공되어야 하는 투자기법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데 수수료율이 높거나, 불필요하게 복잡한 동적 자산 배분들 위주더라고요.
특히 수수료율이 가장 큰 불만 중 하나였습니다. 수수료율이 높으면, 고객은 장기적으로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그럼 미국은 어떻냐? 자산 배분 전략은 가지각색이지만 수수료율은 대부분 낮아요. 한번 한국의 자산배분 펀드나 상품들과 비교해보세요. 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출처: 유안타증권 보고서
제가 만들고 싶은 건 뱅가드 같은 회사입니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브리지워터 같은 회사도 있지만, 브리지워터는 초고액 기관들만 상대하는 회사에요. 브리지워터에 돈 맡기려면 1,000억 이상 있어야 해요. 기관만 받아요. 반면 자산 배분 상품의 세일즈를 B2C로 많이 하는 곳은 사실상 뱅가드에요. 뱅가드의 방식은 뭐냐면, 내가 다 만들어 놨으니까 너희가 이거 조합해서 하고 싶은 대로 투자해, 이렇게도 제공을 하고, 아니면 턴키로도 제공하고요. 그래서 뱅가드를 통해 정말 많이 투자해요. 미국에서. 근데 우리나라는 없는 거예요. 이런 회사 자체가.
우리나라도 분명히 자산 배분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이 싸고 쉽게 할 방법이 없으니까 저처럼 하나하나 공부하면서 하던가, 아니면 지나치게 비싸게 이용해야 하는 건데. 이게 너무 불합리하고, 누군가가 바꿔야 한다. 사실 그 생각에서 창업한 거예요.
최: 아이러니한 게, 우리나라 투자도 꽤 역사가 깊은데, 자산 배분 관련된 책이…
단테: 홍춘욱 님, 김성일 님 외에는 없죠. 저 말고도 많이들 연구하고 책을 쓰시고, 또 많이들 읽었으면 좋겠어요. 자산 배분은 실제로 투자수익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방식이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의미가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제가 회사도 만들고, 유튜브도 하고, 책도 쓰게 된 이유는 모두 같아요. 저는 자산배분 투자를 널리 퍼트리고 싶어요.
최: 레이달리오로 빙의한다면, 단테 달리오는 어떤 얘기를 하실 건가요?
단테: 저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자신에게 맞는 투자는 무엇이고, 그대로 한다면 언제 틀릴 것인지, 틀리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늘 파고들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바탕으로 나만의 원칙을 세우는 거죠.
그다음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 투자해서 포지션이 있다면, 그 포지션에 들어갔을 때 세운 자신의 원칙에 맞게 투자를 유지하는 거죠. 설령 손실을 보더라도 원칙을 잃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행동을 적게 해야 한다. 특히 자산 배분 투자자라면 말이지요. 주식이 너무 많이 빠졌으니 이제 사야 할까? 아니면 나 너무 무서워, 채권을 엄청나게 많이 사야 할까? 이렇게 상황에 반응하지 말고, 내 투자원칙이 뭐였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고, 더 공부하는 게 맞는 방향인 것 같아요.
최: 이번에 나온 책 『절대수익 투자법칙』에서는 어떤 얘기를?
단테: 자산 배분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논리를 쌓아나가면서 바닥을 다지고 하나씩 하나씩 올리자는 마음으로 정리했습니다. 왜 우리가 일반적인 투자가 어려운지부터 시작해서 자산 배분의 기본, 『현명한 투자자』에 나오는 주식과 채권, 1970년대 나왔던 인덱스 펀드, 그다음 60:40 자산 배분에서 올 웨더로. 어떻게 보면 진화한 거죠. 개인의 베타 투자가 진화하는 과정을 긴 호흡으로 그렸고요.
제가 그동안 받은 질문이 굉장히 많아요. 책의 후반부에서 질문의 대답을 쭉 정리해 봤어요. 대표적인 게 ‘초저금리시대인데 뭔 장기채야?’ 이거거든요. 그것부터 ‘연금계좌는 어떻게 해야 해요?’ ‘경제위기가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런 사람들이 제일 많이 물어보는 것에 관한 대답을 정리했습니다.
최: 어떤 분들이 봐주시면 좋을까요?
단테: 투자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한다고 생각해요. 알파 투자의 수익률이 꾸준히 잘 나오는 것은 아니거든요. 알파 투자의 수익이 부진할 때 그 부진한 수익을 만회해주는 중심을 잡아줄 만한 전략은 꼭 필요하거든요. 그리고 자산 배분에 기본적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이 들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투자 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안정적인 수익은 가지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많은 투자 강의나 투자 관련 책이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냐’ 싶게 불명확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저는 집에 들어가서 당장 실행할 방법을 알려드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