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사람들은 ‘가치투자’를 모른다: 라쿤자산운용 홍진채 대표 인터뷰 :: 그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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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사람들은 ‘가치투자’를 모른다: 라쿤자산운용 홍진채 대표 인터뷰

아직도 사람들은 ‘가치투자’를 모른다: 라쿤자산운용 홍진채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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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전기공학 전공한 공돌이인데… 대학생 투자 고수로 유명하셨다고요?

홍진채: 그게… 제가 한국밸류자산에 입사할 때 회사 차원의 첫 공채였거든요. 회사 홍보 차원에서 아름답게 포장하다 보니… 그렇게 알려졌네요.

최: 그런 것 치고 학부생 주제(?)에 책도 쓰셨던데?

홍진채: 그때가 제 인생의 리즈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웃음). 책도 쓰고 TV도 출연했어요. 그게 당시 투자동아리 회장(서울대 SMIC)을 하고 있었는데 출판사 쪽에서 동아리에 의뢰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동아리에서 열정 있는 회원들과 책을 썼죠. 그런데 의뢰부터 출간까지 1년이나 걸렸습니다. 어쩌다 보니 계약 직후에 입사해 버리고, 그렇게 신입사원일 때 책이 출간되었네요.

최: 선배들 보기 뻘쭘했겠군요…

홍진채: 뭐, 그래도 후배가 열심히 한다고 귀여워하던데요.ㅎㅎㅎ

성공투자노트책표지사진
이게 바로 리즈시절에 쓴 그 책.jpg

최: 학생 때 투자 수익은 얼마나 올리셨나요?

홍진채: 2003년에 시작했죠. 주식 처분하던 2007년까지 연평균 시장대비 6%p 높은 수익을 올렸네요. (참고: 증권회사 등 금융업 종사자는 주식매매가 금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최: 당시 상승장 아니었나요? 거기서 시장 대비 6%p였으면 엄청난 부와 명예가…

홍진채: 700포인트에서 2,000포인트까지 올라갔죠. 과외비 받은 거로 한 달에 몇십만 원밖에 못 넣던 시절이었지만 뭐, 그랬습니다.

최: 전공 공부하기도 빡센데, 어떻게 투자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홍진채: 학점이 안 좋아서 먹고살 길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ㅎㅎ.

최: ㅎㅎㅎ

홍진채: 인생이 다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웃음) 사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대 갈 때까지만 해도 좋았습니다. 그때는 그래도 제가 꽤 똑똑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 나보다 똑똑하고 범접할 수 없는 인재들이 널려 있더라고요. 시험도 망치고… 그러다 보니 되게 무섭더라고요. 다 나보다 잘났는데 그 사이에서 전공 살려봐야 저 친구들에게 그냥 발리겠구나, 그냥 그렇게 살겠구나… 꿈 많은 20대 청년이었기 때문에 전공 말고 뭘 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그렇게 방황하면서 진로가 한 10번 정도 바뀌었어요. 변호사, 게임 개발자, 변리사 등…

그러던 중 서점에서 초단타매매 관련 책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때 ‘아, 이런 세상이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죠. 그때부터 피터 린치의 『월가의 영웅』이나 『현명한 투자자』 같은 책을 사서 읽었어요. 그렇게 모의 투자로 이어지고, 그다음에는 실제 투자…

최: 오오… 바로 수익으로 이어졌나요?

홍진채: 그다음에는 군대에 갔습니다 (…)

군인들사진
20대 초반이면 피할 수 없는 바로 그…

최: ….

홍진채: 그런데 그게 다행이었어요. 군대에 있는 동안은 주식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입대할 때 가지고 있던 주식은 자연스럽게 장기 투자로 이어졌습니다.

최: 요즘 말로 ‘존버’를 하셨군요.

홍진채: 그렇죠. 책 보면 다 그런 얘기하잖아요. 잦은 매매 하지 말고 묻어 두라고. 우량주에 장기 투자를 하면 좋고 어쩌고저쩌고. 그런 걸 읽는데 공대생 특징상 또 검증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어차피 군대도 가겠다, 한 3년 묻어보면 어떤 성과가 나오나 싶어서 다녀왔죠. 그런데 진짜 몇 배가 늘어 있는 거예요? 와 씨, 이거 되는구나. 그때 자신감을 굉장히 많이 얻었어요.

최: 와우…

홍진채: 또 군대에서는 사회의 뉴스를 접하기 어렵잖아요? 그러다 보니 거기에서 투자 책만 20권에서 30권 정도를 다 읽고 정리했어요. 이 책에서는 기업 분석 관련해서 이런 내용을 이야기하고, 이 책에서는 이런저런 투자 기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그 정리들을 모아 보니 A4용지로 40페이지 정도 되는 저만의 투자기법으로 완성되더라고요. 또 후임 앉혀두고 “야 네가 나중에 뭘 하든지에 투자는 알아야 한다. 세상에는 가치투자라는 게 있어 어쩌고저쩌고” 하고 막 썰을 풀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만든 프레임워크에 더해서 썰 풀 때 느꼈던 피드백이 보완되더라고요. 그렇게 저만의 이론을 다듬어나갔던 거죠(후임은 귀찮아했다고 한다).

최: 말 그대로 군대가 사람 만든(…)

홍진채: 나름 알차게 보냈죠. 그러다 복학하니 SMIC라는 동아리에서 리크루팅을 해서 제 프레임워크와 투자 결과를 어필해서 들어갔고요.

최: 투자 동아리에서는 뭘 하던가요?

홍진채: 아무래도 학생들이다 보니 실전 주식 투자 경험은 많이들 부족했어요. 그래서 그 안에서 제가 두드러진(?) 축에 속하게 되었죠. 인정을 받고, 그러니 신나서 열심히 하고, 그러다 보니 팀장이라는 직함도 생기고, 거기서 나아가서 회장까지 하게 되고… 제대하고 두 학기가 남아있었는데 동아리 활동 때문에 휴학할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거의 일상의 7할 수준이었죠.

최: 그쪽 진로를 택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었겠네요.

홍진채: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이쪽으로 진로를 택할 줄은 몰랐어요. 개발자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한국밸류라는 회사에서 “너 와봐라” 하더라고요. 각 대학교 투자 동아리 대상으로 리크루팅을 한다고 지원서를 나눠주더라고요. 동아리 회원들이나 투자에 관심 있는 졸업 예정자들에게 뿌려 달라고요. 그런데 저도 취업해야 하다 보니 날름 지원했죠. 그 길로 합격이 되었어요.

 

가치투자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최: 밸류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홍진채: 3년 차까지는 리서치를 했고, 2011년부터 펀드를 운용했어요. 그렇게 2013년부터는 사모펀드까지 운영했습니다. 그러다 2016년 5월에 퇴사했죠.

홍진채-사진

최: 어떤 걸 배우셨나요?

홍진채: 저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고나 할까요? 선후배들에게 배우는 것도 많지만, 전 주식은 시장에서 배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일하면서 가치 투자라는 게 무엇인지 꽤 많이 고민했죠. 물론 한국의 기존 가치투자자분들도 아주 많은 고민을 하셨을 거예요. 하지만 그분들이 생각하는 가치투자와 제가 생각하는 가치투자는 유의미하게 차이가 났어요. 쉽게 말해 가치투자, 가치주 투자, 장기 투자 이 3가지는 모두 다른 거거든요.

최: 가치투자와 장기 투자는 얼추 알겠는데… 가치주 투자는 모르겠네요-_-;

홍진채: 가치주는 흔히 말하는 저PER, 저PBR 주식이에요. 가치투자의 창시자인 벤자민 그레이엄이 그런 식으로 투자를 자주 해서 ‘가치투자=가치주 투자’ 이렇게 많이들 인식하는데 좀 달라요. 가치주 투자는 쉽게 말해서 PER 5배짜리 주식을 사서 가지고 있다가 PER이 10배 되면 팝니다. 그런데 가치투자는 주식의 가격에 대해 보다 근본적으로 고민해요. 주식의 가치는 결국 기업의 자기자본의 가치거든요. 기업을 분석함으로써 주식의 적정한 가격을 추론해야 하는 거죠. 기업을 분석해서 가치를 평가하고, 그 가치와 현재의 가격을 비교하며 사고팔라는 게 벤자민 그레이엄의 가치투자예요.

자, 당시 벤자민 그레이엄의 책이 나온 게 대공황 무렵이에요. 꽤 오래됐죠. 이제 그 철학을 현재에서 펼쳐 보자고요. 개인이든 기관이든 일부를 제외하고 기업분석 안 하는 사람은 없어요. 회사 이름도 모르고 차트만 파악하고는 매매하는 사람 잘 없어요(가끔 있긴 합니다). 그러면 벤자민 그레이엄의 주장에 따르자면 이 사람들은 모두 가치투자자인 거예요. 가치를 분석하면서 자기 아이디어로 매매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서 알려진 가치투자자들은 ‘가치주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에요.

최: 흐음…

홍진채: 가치투자=가치주 투자가 된 이유는 1930년대에 벤자민 그레이엄이 가치주 투자 방식으로 돈을 많이 벌고 증권분석, 현명한 투자자 등 이런 투자 방식에 대해서 막 강의를 하고 다니니까 다른 경제학자나 재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검증을 해 봐야 될 거 아니에요. 이때 가치투자라는 방식을 검증하기 위해 가치투자자가 고를 만한 주식들을 선별한 뒤 이게 시장 대비 혹은 ‘다른 스타일의 주식군’ 대비 초과 수익을 올렸는지 확인했어요. 이 과정에서 이른바 ‘가치주’를 사용했어요. 그랬기 때문에 이후 가치주 투자가 마치 가치투자인 양 알려지게 된 거죠. 가치투자에 적합한 주식이 있고 적합하지 않은 주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기업의 밸류를 봐 가면서 하라는 게 진짜 가치투자의 정의인데 말이죠.

벤자민그레이엄-사진
현재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자민 그레이엄

최: 가치투자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샘플링을 잘못했다?

홍진채: 맞아요. 사람들이 그레이엄이 투자한 포트폴리오를 뜯어봤어요. 그러니까 PER이 낮고 유동자산 혹은 현금이 시가총액의 몇 퍼센트 이상이다, 이런 조건이 나오더란 말이죠. 그래서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주식들을 쫙 묶었어요. 이걸 뭐랑 비교해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 아니에요. 뭐랑 하지? 아, 성장주랑 해야지. 그래서 밸류 스탁(Value stock) vs. 그로스 스탁(Growth stock) 구도가 된 거죠. 수치를 보니까 이쪽이 좋을 때도 있고 저쪽이 좋을 때도 있어. 그래서 가치투자가 실제로 된다, 혹은 허구다, 이런 식으로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어요. 근데 사실 애초에 이 싸움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로스도 밸류고 현금도 밸류예요. 그걸 보면서 하라는 게 진짜 벤자민 그레이엄의 이야기였죠.

워런 버핏이 자기 투자철학의 85%는 벤 그레이엄에게서 왔고 15%는 필립 피셔로부터 왔다고 했어요. 그런데 필립 피셔는 성장주 투자자거든요. 가치투자의 세계에서는 가치주, 성장주의 구분이 무의미해요. 가치투자의 전설적 고수들도 성장주에 대해서 고민 많이 했고 실제로 매매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 한국의 가치투자를 표방하는 사람들, 언론에서 가치투자를 다루는 사람들은 가치보다는 가치주에 집중한 거죠.

최: 그런 부분을 깨달으셨군요.

홍진채: 그렇죠. 회사에 들어와서 가치투자에 대해 본격적으로 파악했어요. 히든 에셋을 중요하게 보는 법도 배웠어요. 선임분들이 “이 회사는 이런 히든 밸류가 있어”라면서 본인 포트폴리오에서 쫙 꺼내 보여주시는데, 제가 너무 충격을 받은 거예요. 와, 이런 식으로 할 수 있구나. 굉장히 신선한, 좋은 충격이었던 거죠.

최: 정확히 예를 들면 어떤 건가요?

홍진채: 자회사가 어디에 땅을 하나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시가로 몇천 억이래요. 그런데 모회사의 시가 총액은 300억이에요. 그러면 이 땅만 팔아도 기업의 3배는 넘는 거니, 기업 가치에 충분히 반영되어도 좋다는 거죠. 뭐 이런 거? 이전에 제가 재무제표를 보면서 파악하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이해였어요. 아, 이런 게 숨어 있구나. 이게 이분들의 가치투자구나. 그 점이 되게 좋았어요.

최: 인적 구성도 뜯어볼 수 있는 건가요?

홍진채: 그건 보다 그로스 스탁 쪽에 가까워요. 그런데 그로스 스탁은 모두가 좋아하는 거잖아요. 성장은 스타트업도 그렇고 모두가 추구하죠. 그렇기 때문에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장이어야만 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구분해 낼 수 있는가… 그 생각의 갈림길에서 제가 말씀드린 프레임워크 같은 것들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당시 회사에서는 성장주 쪽을 크게 주목하지 않았어요.

최: 성장주에 투자하는 것도 가치투자 아닌가요?

홍진채: 살짝 아쉬웠죠. 그래서 당시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쟤는 성장주 매니저, 혹은 쟤는 중소형주 매니저 이런 식으로 포지션이 갈리더라고요. 하지만 벤 그레이엄의 책을 읽어봐도 밸류 스탁이 그로스 스탁보다 우월하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아요. 밸류 스탁에는 이런 리스크가 있고, 그로스 스탁은 이런 리스크가 있어 정도의 이야기를 하죠. 그런데 당시는 대공황 이후잖아요? 기업의 가격이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져 있어요. 회사가 보유한 현금이 1,000억인데 시총이 300억 수준인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거예요. 그러니 당시에는 밸류 스탁에 투자하는 게 리스크 대비 리턴이 높았다는 거죠.

최: 흐음…

홍진채: 다만 밸류 스탁에도 단점이 있어요. 캡이 씌워져 있다는 거예요. 현금이 1,000억인데 기업의 가치가 1,000억을 넘어 2,000억, 3,000억까지 가기 위해서는 여기에 부가가치가 붙어야 해요. 그러니 아까 말씀하신 대로 이 회사에 들어가 있는 인적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회사가 하는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 사업의 전망은 어떤지 고민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 스탁이 평균적으로 좋은 스탁이냐, 이건 알 수 없는 거죠. 하지만 현금 1,000억인데 시총 300억은 너무하다, 그러니까 꿀이네? 이러면서 이쪽을 싹 매집했던 거예요. 하지만 1980년 그 시점에 벤 그레이엄 아저씨가 살아 있었다면 그런 식으로 주식을 했을까요? 저는 아닐 확률이 높다고 봐요. 한 사람의 성향을 파악할 때 보편성과 특수성을 항상 같이 봐야 하잖아요. 이 사람은 원래 이런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했다 이걸 구분해서 봐야 해요. 하지만 보통은 그 특수성을 보편성으로 치환해서 이야기하게 돼요.

최; 그래서 벤 그레이엄의 밸류 스탁도 그냥 “이 사람은 밸류 스탁을 좋아하니까 이렇게 한 거다”라고 사람들이 판단한 거군요.

홍진채: 그렇죠. 저는 그로스 스탁이 기본적으로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로스 스탁을 많이 매매한 편이지만, 밸류 스탁도 언제든지 살 수 있었어요. 퇴사하기 전 한 6개월 정도의 제 포트폴리오는 밸류 스탁 다 깔아놓고 나왔어요. 제가 2015년에 성과가 굉장히 부진했는데, 연말에 싹 다 바꿔서 밸류 스탁을 깔아서 2016년 퇴사하기 전까지 상위 10% 정도를 하고 나왔어요. 그걸 보고 저희 본부장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너 요즘에 평소 안 사던 주식을 많이 사네?” 회사에서도 저 녀석은 스타일이 되게 특이하다, 그러더라고요. 근데 또 이채원 현재 사장님, 당시 부사장님은 그런 걸 되게 좋아하셨거든요. 본인도 성장주를 좋아하고. 그분은 강연에서도 항상 가치는 3가지의 종류가 있다고 말씀하세요: ‘자산가치, 수익가치, 성장가치. 그중 성장가치는 좋은데 되게 어렵다. 자산가치는 쉬운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개인 투자의 기법: 경쟁이 아닌, 자신만의 수익을 목표하라

최: 단적으로 회사에서는 무엇을 배우셨다고 생각하시나요?

홍진채: 많은 걸 배웠죠. 기관 투자자라는 지위 덕분에 시장 돌아가는 걸 깊이 있게 배웠고, 애널리스트 분들에게 들은 것도 많고 기업 탐방 다니면서도 이런저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그때에서야 내가 해왔던 발자취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더라고요. 학생 때, 그러니까 2003년부터 2007년까지의 성과는 나쁘지는 않았지만 당시 시장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당연히 돈 버는 거였고, 2011년부터 퇴사 전까지 펀드 운용하면서 올린 성과도 좋았지만 운이 굉장히 많이 작용한 거구나. 내가 리스크 테이킹을 많이 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보상인 것도 꽤 많구나. 이런 것도 많이 배웠죠.

최: 가치투자를 좀 안 좋아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홍진채: 안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가치투자라는 용어를 안 좋아해요. 그 용어가 굉장히 많은 오해를 낳고, 일종의 선민의식도 낳고, 타인을 배척하는 의식도 낳아요. 기술적투자자나 모멘텀투자자들을 보며 ‘우리가 정파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정파, 사파 같은 건 애초에 없어요. 지속 가능하게 돈을 벌 수 있느냐, 그 사실 하나만이 중요해요.

저희는 가능한 한 유연함에 대해서 많이 강조해요. 쉽게 말해 무철학이 철학이에요. 특정 철학에 얽매이지 말고 단 하나, 좋은 투자를 해야 해요. 투자자는 개인이 곧 하나의 블랙박스예요. 의사결정을 정교하게 하거나 정밀하게 하는 건 투자자 개인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타인이 뭐라고 할 수 없는 영역인 거죠.

 

최: 주로 뭘 보세요? 기법이라 하는 여러 가지 복잡한 게 있을 텐데, 누구는 뭐를 제일 우선한다, 이런 거 있잖아요.

홍진채: 그때그때 다르죠. 주가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요. 펀더멘탈이 있고, 여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이 더해져서 왔다 갔다 하는 거죠. 그러면 당연히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하는 건 펀더멘탈이고, 그다음에 봐야 하는 건 사람들의 심리죠. 그런데 펀더멘탈을 볼 때의 우선순위도 그때그때 달라요. 산업 영역도 다르고 이 산업의 사이클도 다르고, 경쟁자 대비 포지셔닝도 달라요. 그러니 원론적으로 뭐가 중요하다, 나는 이걸 중요시한다, 이렇게 대답을 할 수는 없는 거죠. 다만 사람의 감정적인 부분에 대해서 뭘 봐야 하는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흥분해 있는가? 얼마나 욕망과 자신감에 차 있는가? 혹은 얼마나 우울해하고 있는가. 시장 전체 레벨에서, 산업 레벨에서, 개별 기업 레벨에서 두 가지를 잘 조화시켜 좋은 기회를 발견하면 사는 거예요.

최: 흐음…

홍진채: 정리해서 말씀드리자면, 그냥 유연함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남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가, 내 생각은 어떤가. 그 두 가지의 생각에 차이가 있다면 그 사람이 틀렸거나 내가 틀린 거예요. 그렇다면 누가 틀렸는가, 그건 어떤 타임라인에서 어떤 이벤트가 터졌을 때 검증돼요. 이건 되게 중요해서 제 강의에서도 나올 내용이에요. 내 아이디어가 과연 펄스파이블(Falsifiable)한가? 칼 포퍼 혹시 읽어 보셨나요? 포퍼는 ‘반증불가능성’이라는 개념을 매우 강조해요. 어떤 이론이 이론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증 가능하냐, 아니냐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죠.

칼포머사진
갑분칼(갑자기 분위기 칼 포퍼)

최: 반증.

네, 펄스파이(Falsify)가 ‘틀렸다고 검증하다’라는 동사예요. 펄스파이블은 ‘틀렸다고 검증할 수 있는’이라는 형용사이고, 언펄스파이블(unfalsifiable)은 ‘틀렸다고 검증할 수 없는’이라는 뜻이죠. 예를 들어 이 병에 담긴 게 마법의 약물이에요. 제가 허리가 되게 아픈데 마법의 약물을 마시고 기도를 올리면 낫는대요. 이건 어떻게 검증하죠?

최: 뭐, 기다려야죠.

홍진채: 그렇죠? 자, 마시고 기도를 했어요. 그러면 결과는 둘 중 하나요. 낫거나, 낫지 않았거나. 나았으면 OK, 이건 참이야. 그런데 안 나았으면? 그건 내 기도가 부족했다고 회피할 수 있죠. 죽을 때까지 기도했는데 안 나았다? 그러면 죽을 때까지 충분히 기도하지 못한 거예요. 이 두 케이스에서 아직도 ‘틀렸음’을 입증하지 못한 거예요. 그러면 이 명제는 언펄스파이블인 거예요. 예를 들어 우량주에 장기 투자하라는 이야기가 있죠. 그건 대표적인 언펄스파이블이에요. 일단 우량주가 뭘까요? ‘장기’는 또 얼마의 기간이 ‘장기’인가요? 흔히 우량주라고 하는 어떤 종목을 사서 10년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손실이 났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 20년 가야죠.

홍진채: 그럼 20년 가줘야죠. 투자 업계에만 한정해서 생각하더라도 이런 투자 스타일이 상당히 많아요. 그래서 저는 제 전체 투자 스타일에서도, 개별 투자 건에서도 어느 시점이 되면 내가 틀렸음을 검증할 수 있는지를 중요시해요.

최: 개인 투자자는 쉽게 못 따라 할 것 같습니다.

홍진채: 아니죠. 개인이니까 더 이렇게 해야죠. 기관과 개인의 차이는 뭔가요? 개인은 정보의 양이 부족합니다. 정보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데 투입하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자금도 부족합니다. 이 3가지겠죠. 그러면 반대로 기관투자자는 이 3가지에서 장점이 있을 겁니다. 동일한 시간에 애널리스트 리포트가 포스팅되면 기관투자자는 훨씬 많이 읽을 수 있어요. 그러다 알음알음 이야기도 들려오죠. 어느 기관에서 뭐 산대, 뭐 판대. 그런데 사실 이건 다 노이즈거든요. 대형 기관에서 A라는 주식을 판다는 소문이 돌아요. 그러다 며칠 지나서 다시 산대, 라는 소문이 돌아요. 그럼 어떡해야 돼? 따라 사요? 아니면 팔아요? 이상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게 되게 소중한 정보라고 생각하고 쫓아다녀요. 근데 좀만 생각해 봐도 이건 완전히 무의미한 거예요. 아주 단기적인, 몇 틱을 내가 빠르게 매매해서 이득을 얻겠다? 짧게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식의 투자법이 지속적으로 초과수익을 낼 수 있느냐? 전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런 식의 매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들어오는 정보가 옳아야 해요. 믿을 만해야 해요. 그리고 그 정보를 내가 더 빨리 접해야 해요. 정보를 잘 해석하고 대응해야 해요. 누가 이걸 다 알 수 있겠나요. 인간이 이걸 할 수 있겠어요? 기관도 다 자기들끼리 경쟁하는데. 개인투자자들의 가장 큰 착각이 그거예요. 개인과 기관이 싸운다고 생각하는 거. 그런데 사실 기관은 기관과 싸워요. 자기들끼리 싸우기 바빠요. 기관이 개인과 대비해서 우위를 점하는 요소는 아까 말씀드린 것이 그런 것인데, 사실 이것은 초과수익을 내는 데 아무런 기여를 못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렇다면 초과수익을 내기 위해 뭐가 필요할까? 연역적인 추론이죠. 나의 투자 스타일, 나의 프레임 워크.

최: 개인 투자는 웬만해선 하지 말라는 얘기 같은데요…

홍진채: 저도 웬만해서는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실 기관도 투자 내공보다는 우연에 그 사람의 성과가 좌우될 가능성이 높죠. 오랫동안 살아남은 기관투자자는 과연 잘해서 살아남은 걸까? 시대가 맞아서 살아남은 걸까? 이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던져봐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이런 관점에서는 개인이 기관보다 불리할 게 없어요.

누군가 이렇게 비유를 했어요. 투자는 레이싱 카와 일반 차량이 공도에서 그냥 같이 달리는 거다. 그런데 우리의 목적이 뭐냐? 제가 일반 차를 타고 레이싱 카와 함께 달리고 있어요. 저의 목적은 뭐예요?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달하는 거예요. 레이싱카를 이기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제가 해야 할 일은 쟤네가 지나갈 때 이겨 먹으려고 1차선 막는 게 아니라, 어 그래 가라, 나는 이렇게 갈게. 맞붙으면 다치니까 피해 가야지, 혹은 저 차선 비어 있으니까 저리로 가야지, 하는 거죠.

최: 호오…

홍진채: 사실 기관투자자들은 목적이 명확해요. 모든 주식에서 모든 모멘텀을 먹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죠. 그래서 오히려 성과 내기에는 불리한 영역이 많아요. 그런데 개인은 그런 제약이 없기 대문에 그냥 자기 타깃을 파악하고 자기가 좀 더 잘하는 요소, 그러니까 인내심이나 정보의 해석능력, 혹은 전문지식 등 자신의 경쟁력을 찾아내서 그 안에서만 놀면 돼요. 이 조건만 만족시키면 어디 가서 깨지는 것도 힘들어요. 여기서 조금 더 하자면, 경쟁력의 영역, 그러니까 워런 버핏이 ‘circle of competence’라고 불렀던 이 영역을 조금씩 조금씩 확장해 나가는 것도 중요해요. 이렇게만 하면 되죠. 저는 학생 때에도 초과수익을 냈고, 지금은 작은 운용사에 있지만 올해 하락장에서도 거의 안 깨졌어요. 저희 회사가 작으니까 다른 기관투자자들에 비해서 정보 열위에 있잖아요? 그런데도 좋은 성과를 낸 건 정보력 이외의 다른 요소가 작용한다는 거죠.

질주짤
선수들이 뛰는 데 끼지 말고 내 수익만 내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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